사울이 바울로
이방인들의 전도자로 하나님께서 뽑으신 사울은 그의 이름에 뜻이
“여호와께 구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유대인 중에 유대인으로서
바리새파에 속하였고, 정통 유대인의 교육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아 구약 말씀에 능통한 사람이었지만, 여느 유대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계획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이해되며, 오직 유대인들만이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으로서, 구원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있다고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세상에 생겨난 이후로
교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겨나서, 이기적인 신앙이 된 부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7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하, 나는 바로 이 소망 때문에 유대 사람에게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일로 여기십니까?
9 사실, 나도 한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데에,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0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예루살렘에서 하였습니다.
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그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11 그리고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그들을 형벌하면서,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다다랐으므로,
심지어 외국의 여러 도시에까지 박해의 손을 뻗쳤습니다."
12 "한번은 내가 이런 일로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가지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13 임금님, 나는 길을 가다가, 한낮에 하늘에서부터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이
나와 내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에 히브리말로 나에게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 하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5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16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17 나는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낸다.
18 이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그러므로 아그립바 임금님,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환상을 거역하지 않고,
20 먼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온 유대 지방 사람들에게, 나아가서는 이방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하였습니다.
21 이런 일들 때문에, 유대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를 붙잡아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22 그러나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낮은 사람에게나
높은 사람에게나 이렇게 서서 증언하고 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습니다.
23 그것은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6 : 7 ~ 23절 - 새번역성경
사울(여호와께 구하다)을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르셨고, 이후로는
사울의 이름을 바울(작은 자)로 개명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자아(自我)가 죽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울에서 바울이 된, 사도 바울은 정말로 자신의 육체의 소욕은 하나님 앞에
모두 내려놓았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로서 신약의
상당부분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믿음의 성전들을 독려하게 하십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들이
육체의 소욕을 따랐던 삶에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6 : 17 ~ 20절 - 새번역성경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마태복음 18 : 18 ~ 20절 - 새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함께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의 삶은 곧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땅에서 매면 하늘나라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사울이 바울로 바뀌는 삶을 살았던 것과 같이, 즉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바울이 되어서 살았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옛 사람은 죽고,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말씀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사는 삼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삶으로서 사랑의 본체,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확증하여 주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바라고, 믿고, 참아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 곧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았던
삶에서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으로 자아(自我)의 생각을 죽이는 삶을 살며,
매일 죽노라.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달리기를 하는 것에
비교하면서 잠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 : 19 ~ 27절 - 새번역성경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세 이후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시는 구원의 은혜는 죽음의 세계에도 전파되었다고 베드로전서
3장, 4장에 기록하여 말씀하십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
하면서 믿겠다고 선언하는 세례가 노아의 홍수 때에 죽은 영혼들을 생각
하고,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곧 양심이며, 이성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한 양심으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오직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할 수 있으며, 이를 믿음으로
받고, 입으로 시인하여, 삶으로 살 때에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사시면서 중보의 기도와 함께
성경 말씀 안에 거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것이며, 이후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하실
것에 대하여 언약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언약이 있기 때문에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사울에서 바울이 되어서 자신은
죽고, 성령님께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렇게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필요 불가결(必要 不可缺)에 삶입니다.
'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개와 용서의 관계 (0) | 2023.09.14 |
---|---|
구원의 첫 걸음 회개 (0) | 2022.07.26 |
하나님 백성의 삶 (0) | 2022.04.08 |
언약을 받기 위하여 인내가 필요합니다. (0) | 2022.03.25 |
헛된 신앙에서 참 신앙으로 (0) | 2022.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