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누님의 소천

송병청 2022. 8. 30. 16:19

누님의 소천

 

 

모든 사람은 창세 이후로 현재까지 모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왜 생로병사에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고, 설명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있으며, 이 책은 약 1,600년 동안에 걸쳐서 약 45명에

의하여 기록되었고, 한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의 두 아들 중 작은 아들 야곱,

곧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을 통하여 나라가 되게 하신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배반의 상징이며, 악의 상징이 된 바벨로니아의 갈대아 우르지역,

곧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자손이 세워놓은 지역에 살았던 노아의 첫 째

아들 셈의 자손 중에서 데라와 그의 아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을 부르셨고,

데라와 아브람은 말씀에 의존하여 갈대아 우르지역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나이 많이 먹어 하란에 머물기 시작할 때에

100세 이상이 되었을 것이며, 하란에서 약 35년을 머물렀다면 데라의

나이는 135세쯤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데라의 아버지 나홀의

연수를 살펴보면 나홀은 148세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창세기 11장 참조)

이러한 상황을 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서 머물며 살면서 언약의

땅을 향한 소망을 갖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데라가 아닌 아브람을 만나셔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에 30년 이상을 자신들의 조상들과 함께 우상숭배를 하였던 바벨로니아를

떠난 이상 더 지체할 필요를 못 느꼈던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란 땅을 떠났고, 이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75세 이었으며, 아버지 데라는

145세 이었고, 아들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를 떠난 후 데라는 하란에서 60

동안을 더 살다가 하란에서 세상을 떠납니다.(창세기 1130, 31절 참조)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때는 99세가 되었을 때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

곧 가나안 땅에 이른 후 약 24년이 흐른 뒤 이었으며,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

사래가 늙어서 자손에 대한 소망이 끊어져서, 사래의 제안으로 사래의 몸종

하갈과 사이에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지 약 13년이 흐른 뒤 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다시금 언약을 생각하게 하시면서

1년이 흐른 뒤에 사래의 몸을 통하여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브람과 사래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기에

웃었고, 이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면서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이삭(웃음)이라

부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인본주의적인 믿음이 아닌

신본주의적인 믿음,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며, 사람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서 역사하심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육신의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남자들이 볼일을 볼 때마다 의도하지 않아도 언약을

되새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에 대한 신본주의적인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이며, 이를 확인하신 사건이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받치라는 명령이셨습니다.

저와 저의 누님의 믿음을 되돌아보면, 믿음의 조상에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의 집안이 믿음의 집안이 된 것은 누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집안에서

일어났던 가정불화가 믿음의 불씨가 되게 하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모두가 세상에 태어나면

생사고락(生死苦樂)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한 답을 알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설령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지라도 자신의 앞날에 무슨

언약이 있는지?! 에 대하여 어렴풋이는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세히는

모르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저와 저의 누님도 이러한 일반적인 믿음과 소망가운데 살았고,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저의 삶과 누님의 삶 가운데 항상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저희의 마음에 중심을 살펴보고 계셨고, 부족한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사람에게는 실망하였지만,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음 안에 머물게

하셨으며,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였을 때에 저의 마음에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이 때가 20141220일 이후로 너무도 놀라운 일을 겪게 된 제가 딱히

이야기를 나눌 곳을 찾지 못하였을 때에 우연히 누님과 통화를 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게 보이게 된 것을 나누었을 때에 아주 편안하게 받아

주었으며, 이를 인하여 저는 상당한 위로를 교회를 통하여 얻지 못했던

위로를 받게 되었으며,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에 안타까웠던 것은 누님도 세상을 향한 소망을 완전하게

놓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에

하나님과 세상의 것 사이를 병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저의 목숨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살고 있는 저의 눈에는 저의

질병을 하나님 앞에 놓고 산다고 하는 믿음에 대하여 책망을 들었으며, 과연

누님과 저의 믿음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대한 생각을 참으로 많이 하 기도 했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주어진 달란트(재능)를 가지고 서로를 섬기면서 살게

하셨기에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일이 하나님 보다 더 우선 시 되고 있기에 문제가

되고 있으며, 아사 왕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셔서, 경고에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1 아사 왕 삼십 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고, 어느 누구도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2 그러자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 왕실 창고의 모든 을 모아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의 벤하닷 왕에게 보내며 말하였다.

3 "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었듯이, 나와 그대도

서로 동맹을 맺도록 합시다. 여기 그대에게 은과 금을 보냅니다.

부디 오셔서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과 맺은 동맹을 파기하시고,

그가 여기에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4 벤하닷은 아사 왕의 청을 받아들여, 자기의 군사령관들을 보내서,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양곡 저장 성읍을 치게 하였다.

5 바아사가 이 소문을 듣고는, 라마 건축을 멈추고, 그 공사를 포기하였다.

6 그러자 아사 왕은 온 유다 백성을 불러서,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할 때에

쓰던 돌과 목재를 가져 오게 하였다.

아사 왕은 이것으로 게바와 미스바를 보수하였다.

7 그 무렵 하나니 선견자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시리아 왕을 의지하시고,

임금님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으므로,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는 임금님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8 에티오피아 군 리비아 군이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까?

병거도 군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임금님께서 주님을 의지하시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임금님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습니까?

9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 있게 해주십니다.

이번 일에, 임금님께서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10 아사는 선견자의 이 말에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 때에 아사는 백성들 가운데서도 얼마를 학대하였다.

11 아사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이 되던 해에,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플 때에도

그는 주님을 찾지 아니하고, 의사들을 찾았다.

13 아사가 죽어서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그가 왕이 된 지 사십일 년이 되던 해였다.

14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다.

그 무덤은 아사가 미리 파 둔 곳이다. 사람들은 향 제조법대로 만든

온갖 향을 가득 쌓은 침상에 그를 눕혀서 장사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큰 불을 밝혔다.

역대하 16 : 1 ~ 14- 새번역성경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며,

왕으로서 정책을 지혜롭게 진행하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사람에게 책망의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니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백성들도 학대를 하는 등

자신의 화를 자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화를 내는 일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동으로서, 모세도 므리바 샘에서 화를 내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낼

만큼 믿음이 없는 행동을 했다고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고,

믿음의 정의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는 학문과 과학의 발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더욱더 인본주의적인 믿음으로 말씀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살아계시며, 모든 일에 있어서 현존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더 이상 현실과 무관한 것 같이 느끼고, 믿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선까지 믿어야 하는가?! 에 대한 기준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와 누님 사이에 믿음의 대화도 이러한 현상 가운데서 차이를 느꼈고,

서로를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생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누님의 갑작스러운 입원과 함께 위독한 증세로 인하여 지난 31일에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는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하여 나누었으며,

그 내용은 저에게 주신 사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누님에게

기적을 행하여 주시든지, 아니면 누님이 하나님께로 갔다가 약 8년 정도

지난 2030년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같이 와서 만나자는

이야기로 여느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아닌 정말 저와 누님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연명치료를 거부한 체, 숨쉬기를 힘들어 하는

누님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함께 기도하고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지난 32일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숨을 몰아쉬면서 힘들어 하였던 누님의

모습이 하루 종일 눈앞에 어른 거렸기에 기적을 베푸셔서 빠른 회복을

주시든지, 아니면 빨리 데려 가셔서, 이 세상에서 더 고통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고, 2일 저녁 630분쯤에 동생이 전화하여 누님이

숨을 쉬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듣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중심을 늘 살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에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을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는 일에

때론 악하게, 때론 선하게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살게 하시면서 순종하는 삶을 잘 살아내면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 새번역성경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라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잠언 305, 6절에 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시며, 경고하시면서 겸손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을 살필 것에 대하여

엄하게 경고의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순결하며,

그분은 그를 의지하는 사람의 방패가 되신다.

6 그 말씀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너를 책망하시고,

너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잠언 30 : 5 ~ 6- 새번역성경

 

누님의 소천을 준비할 때에 저를 통하여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말씀은 살아

있는 자에 하나님에 대한 말씀으로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라는 요한복음 11장에 말씀이었습니다.

 

24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요한복음 11 : 24 ~ 27- 새번역성경

 

부활 때가 아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곧 저와 누님의 하나님이시라는 강한 믿음을

주셨기에 이 세상에서 헤어지는 순간을 서로가 기쁘고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기간 동안에 동생을 통하여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라는 찬송가가 계속해서 찬송되게 하여

달라는 부탁으로 은혜롭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저의 몸도 많이 좋지 않은 상태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힘든 중에도 견디며, 이와 같이 은혜를 나누기 위한 글을 쓰고 있으며

누님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늘 되새기며 다시금 힘을 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면 믿음의 실패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음의

사람들은 잘 알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 직전인 이 시점을

살면서 조심, 또 조심하면서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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