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의미
하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요?!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는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이야기
되었고, 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기독교가 세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요?!
콘스탄티누스는 한니발처럼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갔다. 그러나
한니발과 달리 그는 로마 시를 목표로 삼았고, 현지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점령한 도시에서 일체 약탈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민심을 얻으며 진군했다. 마침내 그와 막센티우스와의 결전이 312년 10월
28일에 이루어졌는데, 그 때 콘스탄티누스는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이겨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환영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유세비우스의 창작 내지 뜬소문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밀비우스 다리 앞에서 벌어진 전투는
콘스탄티누스의 대승으로 끝났으며, 이로써 그는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다음은 동방이었다. 한때 콘스탄티누스와 손을 잡았던
리키니우스가 얼마 후 그를 적대시하자, 콘스탄티누스는 기다렸다는 듯
314년에 그를 공격하여 트라키아를 제외한 모든 동로마 영토를 빼앗았다.
그리고 323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켜 리키니우스를 격파했다. 리키니우스는
항복한 뒤 일단 사면 받았으나 몇 달 뒤 결국 처형되었다. 이로써 로마
전역을 평정한(324) 콘스탄티누스는 이후 13년 동안 “정복자이며 최고의
아우구스투스”로 불리며, 로마 제국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파의 책을 태우는 콘스탄티누스
우선 막센티우스를 꺾은 직후인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수백 년 동안
탄압받아온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그 문구를 보면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
라고 하여,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 것이지 기독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칙령의 수혜자는 기독교인이었다. 또
콘스탄티누스는 그동안 국가가 몰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었으며,
사비를 털어서 교회를 신축하는 데 보탰다. 또한 그는 멜키아데스
교황에게 자기 소유의 라테란 궁전을 기증했으며 그것은 이후 천 년 동안
‘교황청’의 기능을 맡았다. 나중에 여기서 착안하여 “콘스탄티누스가 서로마
전체를 교황에게 기증했다”는 내용의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이라는
문서가 위조되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위조임이 폭로되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계속해서 성직자들의 조언에 따라 노예의 사적 처벌
금지법(319), 죄수 학대 금지법(320)을 제정했으며, 321년에는 처음으로
일요일을 휴일로 삼았다(이는 사실 기독교와 전통적인
태양신 숭배의 절충이었다.)
그리고 325년에는 ‘니케아공의회’를 개최하여 당시 기독교 세계의 최대
논쟁이었던 ‘아리우스파논쟁’, 즉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놓고 벌어진
논쟁에서 신성론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처럼 그가 기독교를 부흥시킨
까닭은 자신의 끊임없는 행운이 신의 가호라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로마를 통합시키는 데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전통 종교보다
기독교가 적합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교황을 비롯한 기독교
사제들에게 “신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칭송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황제권을 튼튼히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후 기독교
군주들이 왕권의 근거로 들게 되는 ‘왕권신수설’의 원조는
콘스탄티누스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친 기독교적 정책은 아직도 전통 종교의 뿌리가 깊은
로마 시에서는 많은 반발을 가져왔다. 여기에 계속해서 쇠퇴하던 서방에
비해 동방의 풍요로움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더하여,
콘스탄티누스는 330년에 본래 리키니우스의 본거지였던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곳은 ‘새로운 로마’로 불리다가, 곧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바뀌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점점 아시아의 전제군주를 닮아갔는데, 마지막에는 자신이 “신이 보낸
사람”이라기보다 “신 그 자신”이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죽음이 닥쳐오자 그는 황제복을 벗고 성직자의 흰 옷을 입었으며,
미뤄 오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337년 5월 22일, 황금 관에 넣어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사도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관 주위에는
예수의 12사도의 관(성유물로 채워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열세 번째 사도”의 위치에 놓은 것이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영광은 찬란했으나, 그 영광에는 그림자도 따랐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넘어서까지 영광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잦은 정략
결혼으로 복잡한 가족관계를 형성했다. 자신이 죽인 막시미아누스의 딸인
파우스타 황후와 간통했다는 혐의로 다른 황비에게서 얻은 아들
크리스푸스를 죽였으며, 얼마 후에는 파우스타 역시 죽였는데 역사가들은
대체로 간통의 사실성을 부정한다. 또 방대한 제국을 혼자 힘으로
다스리기란 역시 힘겨웠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으므로, 세 아들과 두 조카에게 부제의 지위를 주어 통치를
분담시켰다. 이는 그의 사후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잔 속에 제국이
사분오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율리아누스는 황제가
된 후 기독교를 다시 박해하는 등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그러나 그가 제국에 가져온 두 가지 변화, 기독교 공인과
비잔티움으로의 천도는 오랫동안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중심을 동방에
빼앗긴 서로마는 급속하게 기울어 갔으며, 결국 150년 정도 뒤에 멸망해
버린다. 하지만 유럽 전체에 주어진 기독교의 세례는 로마를 정복한
‘야만인’들에게도 이어져,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천 몇 백 년을 두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콘스탄티누스 1세 [Constantinus I]
- ‘새로운 로마’를 세운 황제 (인물세계사, 함규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탄압을 받다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후 일요일을 공휴일로 제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정하신 주님의 날을 일요일로 하면서 본래의 로마에서
숭배하였던 태양신과 합체를 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모두 존중을 받는다. 라고 선언하여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의 자유는 전통적인 초대 예루살렘 교회, 아니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 된 믿음의 사람이 성전이 되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셔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의 몸에 지체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온전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일과 상당한 차이를 갖게 하였으며, 결론적으로 성령의
감동, 감화를 소홀히 하게 되면서 완전한 인본주의적인 신앙으로 세상에 전파
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믿음은 현실주의를 지향하며,
과학의 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결국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영적인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하나님은
무관하신 존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에서는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 세시고
계신다.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을 보호하며, 매일 자신들이
행한 일을 하나님 아버지께 보고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심을 따라서 세상이 생겨났고, 운행되어지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현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유의지를 따라서 결정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말씀은 비현실적인 말씀이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초림과 초대교회를 로마의 통치 시대에 있게
하셨고, 열 두 사도 중, 유일하게 사도 요한만 자연사하게 하셨고, 나머지
열 한 사도는 모두 처참하게 죽게 하셨으며, 수많은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자재와 보물로 지어진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하게 하신 후에
몇 백 년이 지나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하여금 주일을 일요일로 세상에 공포
하게 하셨으며, 초대교회가 아닌 로마의 기독교를 통하여 세상에 기독교가
전파되게 하셨을까요?!
이러한 일과 사대성인들을 세상에 있게 하시면서 세워진 종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법 위에 도덕은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에서
허락하셨을까요?! 저에게 깨닫게 하신 것은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이성을 깨우시기 위한 조치를
하시고 계신 것으로 심판의 날에 아무도 변명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한 것과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설계하신 나라의 백성을 뽑고 계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생각에 확신을 주시는 말씀이 히브리서 9장 9절과 14절에 말씀으로
하나님의 법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사랑의 법으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직접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으로 사시면서 동고동락
하시고 계시며, 중보의 기도와 함께 세상 끝 날까지 인도,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증이 되어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게 하십니다.
1 첫 번째 언약에도 예배 규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2 한 장막을 지었는데, 곧 첫째 칸에 해당하는 장막입니다. 그 안에는
촛대와 상이 있고, 빵을 차려 놓았으니, 이 곳을 '성소'라고 하였습니다.
3 그리고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장막이 있었습니다.
4 거기에는 금으로 만든 분향제단과 온통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와 언약을
새긴 두 돌 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5 그리고 그 언약궤 위에는 영광에 빛나는 그룹들이 있어서, 속죄 판을 그
날개로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6 이것들이 이렇게 마련되어 있어서 첫째 칸 장막에는 제사장들이
언제나 들어가서 제사의식을 집행합니다.
7 그러나 둘째 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는데,
그 때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또 백성이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바칠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8 이것은 첫째 칸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아직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9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10 이런 것은 다만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예식과 관련된
것이고, 개혁의 때까지 육체를 위하여 부과된 규칙들입니다.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에서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 : 1 ~ 15절 - 새번역성경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셔서 양심을 깨우시고 계셨으며, 양심의 기록을 따라서
정하신 때가 되면,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들을 소환하셔서 재판을 시작하실
것이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기록을 따라서 예수님을 시인하고 변호를
받든지, 끝까지 부인하여 모세를 통하여 죄를 드러내고 죄의 대가를 지불
하든지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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