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일체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송병청 2023. 7. 25. 12:40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의 지식에 말로써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서 말씀을 전하였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오늘날을 살고 있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살피면서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하고, 하신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말고 자신의 자아(自我)를 처서 복종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는 장차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께 부인 당하지

않기 위한, 믿음을 점검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 나의 설교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7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1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15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 : 1 ~ 16- 새번역성경

 

성령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은 결코 악에 머무르지 않고

오직 거룩함에 머무르려고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데, 이는 자신이

썩어지는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으려고,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려고 싸우는 싸움이 한 순간에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즉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자신의 삶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한 순간에 멀었고,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서 순종하였을 때에 아나니아(여호와는 은혜가

깊으시다)를 통하여 삼일이 지나서, 사울이 바울로 개명하여지면서, 이방인의

전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후로는 자신의 삶이 후퇴하지 않도록 끝없이

자기 자신과 싸웠으며, 죽기까지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성령에 사로잡혀서 바울을 걱정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말릴 때에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만

순종하려 하였으며, 자신이 예루살렘과 로마에서 끊임없이 고난과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받은 사명, 곧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

하였고, 끝내 로마에서 2년 이상을 투옥 중에도 은혜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를 살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그 증거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인 쳐

주시고 계시며, 성령을 통하여 중보의 기도와 함께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을 말씀

안에서 깨우셔서 선한 양심을 따라서 사랑하는 삶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인내하게 하셔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영혼을

창조 하시고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하여, 이 세상 곧 삼차원의 시간과 공간

안에 살 동안 영혼의 옷 곧 몸을 창조하셔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인 은혜로서 베풀어 주셨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이 깨이지 않으면, 자연에 속한 사람으로서, 썩어지는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을 위의 고린도전서 214절에 기록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사람이 사탄의 깊은 흉계에

빠져서 썩어지는 육체의 소욕으로 사탄에게 속하게 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이 세상의 공중에 권세를 사탄이 잡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제사를

통하여 죄의 값을 치러주셨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셔서 함께 사시면서 사탄의 깊은 흉계로부터 보호해주시고 계십니다.

이는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죽음의 권세를 심판하신 증거입니다.

 

23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24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요한복음 11 : 24 ~ 27- 새번역성경

 

위의 요한복음 1127절에 마르다의 믿음에 고백은 베드로의 믿음에 고백과

같다는 사실에서 현재의 믿음에 사람들도 같은 고백을 할 때에, 살아 있는

믿음으로 현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었던 바울은 그의 이름에 뜻과 같이 사울(여호와께 구하다)이었을 때에

자신의 세상 지식 곧 정통 유대인으로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운 지식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지만, 다마스쿠스(물이

좋은 땅) 곧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아나니아(여호와는

은혜가 깊으시다)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도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여서 들을 귀가 열리고, 말씀을 축자영감설로 받아

들여서 자신의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에서 지혜로운 판단과 함께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영원한 삶에 자신의 삶에 목표를 두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움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영혼이 깨어날 수 있으며, 영원한 삶을 잘 준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삶으로 인도하려고, 자신의 옛 사람을 벗은 후에는 오직

성령님께 순종하는 사역을 감당하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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