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율법과 예언서를 그대로 믿었다.
사울(여호와께 구하다)은 바리새파의 정통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핍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 심은 일반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더 했기에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향하였고,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빛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3일 동안
눈이 멀었다가 아나니아(여호와는 은혜가 깊으시다)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
곧 멀었던 눈이 열렸고, 이방인의 전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사울의 이름은 바울(작은 자, 작음)이 되었으며, 성령에 이끌려서 맡은
사역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고, 늘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던 시절을 잊지
않았기에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였으며, 자신의 자아(自我)가 매일 죽노라
하면서 늘 겸손한 자리에서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어서 삶을 살았기에, 그의 영혼이 하나님께
구하였고, 그 결과 다마스쿠스, 곧 다메섹 석상에서 만나 주신 이후로 사울의
자아(自我)는 죽었기에 하나님 앞에서 바울, 곧 작은 자가 되면서 하나님의
사역자로 그의 인생은 완전하게 새 사람이 되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1 닷새 뒤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몇몇 장로와 더둘로(셋째)라는 변호사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2 바울을 불러내니, 더둘로가 고발하여 말하였다. "벨릭스(행복) 총독님,
우리는 총독님의 덕분으로 크게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하의
선견지명의 덕택으로, 이 나라에서는 개혁을 많이 이룰 수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어떤 면으로나, 또 어디에서나, 이것을 인정하며, 감사하여
마지않습니다.
4 나는 총독님을 오래 방해하지 않겠으니,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우리의 고발을 잠깐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5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6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습니다.
(6절 하반부터 8절 상반까지 없음)
8 총독님께서 친히 그를 신문하여 보시면, 우리가 그를 고발하는 이유를
다 아시게 될 것입니다."
9 그러자 유대 사람도 이에 합세해서,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
10 그 때에 총독이 바울에게 말하라고 머리를 끄덕이니,
바울이 대답하였다. "총독님께서 여러 해 동안 이 나라의 재판장으로
계신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내가 한 일을 변호하겠습니다.
11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총독님께서도 곧 아실 수 있습니다.
12 그리고 나를 고발한 사람들은 내가, 성전에서나 회당에서나 성내에서,
누구와 논쟁을 하거나, 군중을 선동해서 모으거나,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13 지금 그들은 내가 한 일을 들어서 고발하고 있지만,
총독님께 아무 증거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총독님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15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데, 나를 고발하는 이 사람들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곧 그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장차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나도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17 나는, 내 겨레에게 구제금을 전달하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려고,
여러 해 만에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18 그들은, 내가 제물을 바치는 절차로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고, 내가 작당을 하거나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 자리에는 아시아에서 온 몇몇 유대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한 일을
들어 고발할 것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총독님 앞에 나타나서
고발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20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의회 앞에 끌려가서 섰을 때에, 이 사람들이
내게서 무슨 잘못을 찾아냈는지, 그것을 말하라고 해 보십시오.
21 다만 나는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관련된 문제 때문입니다'
하는 이 한 마디 말을 부르짖었을 뿐입니다."
22 벨릭스는 그 '도'와 관련된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당신들의 소송을 처리하겠소" 하고
말하고서, 신문을 연기하였다.
23 그리고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지들이 돌보아 주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였다.
24 며칠 뒤에 벨릭스가 유대 여자인 자기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내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바울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25 바울이 정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해서 말할 때에,
벨릭스는 두려워서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가시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당신을 부르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동시에 그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하고 은근히 바랐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자주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27 두 해가 지난 뒤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을 가두어 둔 채로 내버려 두었다.
사도행전 24 : 1 ~ 27절 - 새번역성경
위의 사도행전 24장 14절에서 바울이 고백하듯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기록하신 말씀에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한 결과 16절에서 다시 고백하고 있는 것은 꺼리 낌이
없는 양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의 양심에 대한 고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깨우시고 계셨기에 바울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히브리서 9장 9절에서 구약의
제사로 제사장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지만, 완전하게는 못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며,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는 성령을 힘입어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나라 지성소에서 드리신 제사로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그 믿음의
사람에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시며, 기록하셨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바로
사도행전 21장에서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에서 빌립의 네 딸과 하가보라는
사람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큰 환난과 함께 죽게 될 것을 경고
받았지만, 바울은 이미 자신과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님이 알려 주셨기에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과 같이 죽음에 이르는 순종의 삶으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였고, 이에 대한 기록이 위의 사도행전 24장 말씀이며,
사도행전의 기록이 있기 전에 바울은 로마서를 써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였고, 사도행전의 기록과 같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서
자신을 거룩한 제물로 받치기 위하여 로마로 향하였으며, 로마에서 2년 동안
복음을 전한 후에 순교하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의 십자가를 충성되게 지고 달려갈 길을
온전히 열매를 맺으며 마쳤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로마가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깊은
흉계를 따라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과 인본주의적인 학문을 통하여
세상을 음녀 바벨론의 뒤를 이어서 유혹하였기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복음은 비현실적인 하나님이 되었으며, 동시에 세상은 진화론이라는 인본주의
학문에 의하여, 사탄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스가랴의 뜻이 “여호와(하나님)께 기억 된 자”,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라는 의미와 같이 선민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가 한 달 안에 배반하였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기억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진노의 불로 심판을 하신
후에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시면서, 예수님을 세상에서 만왕의
왕으로 다니엘서 7장에 말씀과 같이 기름 부으실 것으로 이해됩니다.
7 나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돌보았다. 특별히 떼 가운데서도 억압을 당하고
있는 양 떼를 돌보았다.
나는 지팡이 두 개를 가져다가, 하나는 '은총'이라고
이름을 짓고, 다른 하나는 '연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나는 양 떼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8 나에게는 목자 셋이 있는데,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었다. 그들도 또한
나를 미워하였으므로, 나는 한 달 안에 그 세 목자를
다 해고하였다.
9 그런 다음에 나는 양 떼에게 말하였다.
"나는 더 이상, 너희를 돌보는 목자 노릇을 하지 않겠다. 죽을 놈은 죽고,
망할 놈은 망하여라. 그러고도 남는 것들은 서로 잡아먹어라."
10 그런 다음에 나는 '은총'이라고 부르는 지팡이를 가져다가 둘로 꺾어서,
내가 모든 민족과 맺은 언약이 취소되게 하였다.
11 그 언약은 바로 그 날로 취소되었다.
양 떼 가운데서 괴로움을 당하던 양들은 나의 행동을 보고서,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12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좋다고 생각하면, 내가 받을 품삯을
내게 주고, 줄 생각이 없으면, 그만두어라." 그랬더니 그들은
내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주었다.
13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져 버려라."
그것은 그들이 내게 알맞은 삯이라고 생각해서 쳐 준 것이다.
나는 은 삼십 개를 집어,
주의 성전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져 주었다.
14 그런 다음에 나는 둘째 지팡이 곧 '연합'이라고 부르는 지팡이를
꺾어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형제의 의리가 없어지게 하였다.
15 주님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번에는 쓸모없는 목자로 분장하고, 그 구실을 하여라.
16 내가 이 땅에 한 목자를 세우겠다. 그는 양을 잃어버리고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길 잃은 양을 찾지도 않으며, 상처받은 양을
고쳐 주지도 않으며, 튼튼한 양을 먹이지 않아서 야위게 하며,
살진 양을 골라서 살을 발라 먹고, 발굽까지 갉아 먹을 것이다.
17 양 떼를 버리는 쓸모없는 목자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칼이 그의 팔과 오른 눈을 상하게 할 것이니, 팔은 바싹 마르고,
오른 눈은 아주 멀어 버릴 것이다.“
스가랴 11 : 7 ~ 17절 - 새번역성경
세상이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사탄의 깊은 흉계를 따라간 결과로 세상은 하나님 아버지의 저주를
받게 된 것에 대하여 스가랴 5장에서 뒤주 속에 여인에 대한 말씀으로,
이스라엘이 배반한 결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나님의 매가 되게
하셨고, 느부갓네살 왕이 신상을 세우고, 성전을 지었을 때부터 그곳으로부터
세상은 우상숭배를 하여, 하나님의 저주가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가 세상의 통치자로서 있을 때에 초림하신 것도 이러한 일과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에는 바리새파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다메섹 석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바울, 곧 작은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섬겼고, 자신의 모든 지식은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사울의 믿음은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 믿음으로 인본주의적인 믿음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시겠느냐?! 라고 반문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라고 말씀하셔서 경고하시는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면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중보하시고 계심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될 때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이후로 바울의 믿음은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하심에 순종하여서 말씀을 축자영감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죄의 대가로 자신이 천막 짓는 일을 하여 피, 땀을 흘려서 살면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였으며,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운 믿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믿음은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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