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구원에 이르는 믿음

송병청 2022. 2. 23. 15:49

구원에 이르는 믿음

 

 

모든 생명체를 세상에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하시는

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의 은혜에 이를 수 있게

하시는 일은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죄가 모든 생명체들을 자신들의 근본이 되시는 분과 사이를 갈라놓았기에

모든 생명체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온갖 고난과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닥치고 있는

온갖 고난과 환난의 고통이 왜 있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지냅니다.

그렇다보니 삶 자체가 힘들고, 소망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되며,

보이지 않는 것, 곧 마음의 생각에 중요함보다 육체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허무하게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많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에

소망이 없는 중에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셔서, 앉은뱅이의 삶에서 자유를 얻을 소망과 믿음이 현실이 되게 하셨고

이를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갑자가 신격화(神格化) 됩니다.

 

1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양의 가슴)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그래서 유대 사람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2 그러나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을 선동해서,

믿는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하였다.

3 두 사도는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징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

4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더러는 유대 사람의 편을 들고,

더러는 사도의 편을 들었다.

5 그런데 이방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그들의 관원들과 합세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6 사도들은 그것을 알고, 루가오니아(양의 가슴) 지방에 있는

두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하였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줄곧 복음을 전하였다.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되어서,

걸어본 적이 없었다.

9 이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바울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고는,

10 큰 소리로 "그대의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11 무리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서,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13 성 바깥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

14 이 말을 듣고서,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는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외치면서,

15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세대에는 이방 민족들이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들어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18 두 사도는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사하지 못하게

겨우 말렸다.

19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그는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21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23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맡겼다.

24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비시디아 지방을 거쳐서

밤빌리아(모든 백성, 여러 족속) 지방에 이르렀다.

25 그들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반대자)으로 향하여 갔다.

이 안디옥(반대자), 그들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내맡기고 나선 곳이다.

이제 그들은 그 일을 다 이루었다.

27 그 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 회중을 불러 모으고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냈다.

사도행전 14 : 1 ~ 28- 새번역성경

 

루스드라의 뜻은 양의 무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의 특징은

한치 앞을 보기 힘들며, 겁이 많아서 목자가 없이는 푸른 초장을 찾지 못하며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살기 힘들어,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 성경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 목자라고 말씀하시며, 믿음의 사람들을 양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18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고 말하였다.

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를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27 그 무렵에 예언자 몇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

28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어나,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

29 그래서 제자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30 그들은 그대로 실행해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그것을 장로들에게 보냈다.

사도행전 11 : 17 ~ 30- 새번역성경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초림의 삶을 사셨던 본을 받아서 살기에 믿음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즉 크리스천 이라는 말, 자체가

뜻하는 바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아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사울(여호와께 구하다)을 다메섹에서 만나 주셨고,

3일 동안 눈이 멀게 하셨다가 바울(작은 자, 작음)로 개명하여 주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나니아(여호와는 은혜가 깊으시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시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디옥(반대자)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곧 예수 그리스도의 반차를 따르는 성전이며, 제사장이 되어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성령의 열매를 맺는 거룩한 존재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계십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완전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에 이르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만큼 삶으로 행하여, 예수님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섬기는 삶을 사셨던 것과 같은 삶을 살아야, 예수님의 재림의 날, 곧 부활의

날에 함께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0 ,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24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25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 : 20 ~ 26- 새번역성경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을 착각하여,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라고

잘못 알고, 잘못 전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존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하게 믿으면 삶으로 행하여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그 결과로서 함께 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 성령님께 순종하여 선한 양심을 따라서 사랑으로 섬기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이를

때에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심판을 시작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습니까?

18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않은 자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조물주께 맡기십시오.

베드로전서 4 : 17 ~ 19- 새번역성경

 

죽음에 이르는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저의 마음에 눈을 열어 주셔서, 현재와 같이 말씀을 이해하기 전에 의문을

가졌던 것 중에 하나가 앞에서 살펴본 사도행전 1422절에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너무도 편안하게 믿음생활을 하는 것으로 과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왜 말씀과 현실이 다른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보게 하신 말씀을 전하면서부터

믿음의 이방인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왜 말씀과 현실이 분리 되어졌으며,

사탄이 현재까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이유와 함께 예수님 초림 이후로

죽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하시지 않았고, 재림에

초점을 맞추셔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곧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때에 초점을 맞추어서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본주의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신부로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이해됩니다.

'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약을 받기 위하여 인내가 필요합니다.  (0) 2022.03.25
헛된 신앙에서 참 신앙으로  (0) 2022.03.14
불의한 청지기  (0) 2022.02.15
불의의 세계  (0) 2020.12.19
다윗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이유  (0) 2020.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