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
. 아브람
아브람의 뜻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아브람의
인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존귀하다는 말은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하다.” 는 뜻으로 당시에
아브람의 삶에 대하여 짐작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듯이 아브람은 갈대아우르(바빌론)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삶에 여건을 조상들로부터 대물림 받은 부러울 것이
없는 상태에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주의 깊게 살피시기를 75년 동안
하셨고, 아브람의 사람 됨됨이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보셨고,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아브람에게 명령하신 것은 갈대아우르(바빌론)에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아브람은 그 어떠한 질문이나, 의문을 갖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절대로 한 순간에 나올 수 없는
그러한 순종으로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75년간에 걸쳐서 있었던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받은 삶에 모습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함께 하였던 결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의 계보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브라함도 맏이의 계보를 따른 하나님의 것
(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따른 선물 )
1 다음은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이다.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다. 홍수가 난 뒤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다.
2 야벳의 자손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이다.
3 고멜의 자손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이다.
4 야완의 자손은 엘리사와 스페인과 키프로스와 로도스이다.
5 이들에게서 바닷가 백성들이 지역과 언어와
종족과 부족을 따라서 저마다 갈라져 나갔다.
6 함의 자손은 구스와 이집트와 리비아와 가나안이다.
7 구스의 자손은 쓰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이다.
라아마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다.
8 구스는 또 니므롯을 낳았다.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나타난 장사이다.
9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니므롯과 같은
사냥꾼"이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10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 지방 안에 있는
바빌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이다.
11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앗시리아로 가서,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를 세우고,
12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는 레센을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큰 성이다.
13 이집트는 리디아와 아남과 르합과 납두와
14 바드루스와 가슬루와 크레타를 낳았다.
블레셋이 바로 크레타에게서 나왔다.
15 가나안은 맏아들 시돈을 낳고, 그 아래로, 헷과
16 여부스와 아모리와 기르가스와
17 히위와 알가와 신과
18 아르왓과 스말과 하맛을 낳았다.
그 뒤에 가나안 족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 그랄을 지나서, 멀리 가사에까지
이르렀고, 거기에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서,
라사에까지 이르렀다.
20 이 사람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부족을 따라서 갈라져
나간 함의 자손이다.
21 야벳의 형인 셈에게서도 아들딸이 태어났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다.
22 셈의 자손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다.
23 아람의 자손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이다.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아들의 이름은,
그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고 해서 벨렉이라고 하였다.
벨렉의 아우 이름은 욕단이다.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다.
이 사람들이 모두 욕단의 자손이다.
30 그들이 사는 곳은 메사에서 스발에 이르는
동쪽 산간지방이다.
31 이 사람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부족을 따라서 갈라져
나간 셈의 자손이다.
32 이들이 각 종족의 족보를 따라 갈라져 나간
노아의 자손 종족이다. 홍수가 난 뒤에,
이 사람들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와서,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창세기 10 : 1 ~ 32절 - 새번역성경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다. 셈은, 홍수가 끝난 지 이 년 뒤,
백 살이 되었을 때에 아르박삿을 낳았다.
11 셈은 아르박삿을 낳은 뒤에, 오백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2 아르박삿은 서른다섯 살에 셀라를 낳았다.
13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은 뒤에, 사백삼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4 셀라는 서른 살에 에벨을 낳았다.
15 셀라는 에벨을 낳은 뒤에, 사백삼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6 에벨은 서른네 살에 벨렉을 낳았다.
17 에벨은 벨렉을 낳은 뒤에, 사백삼십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8 벨렉은 서른 살에 르우를 낳았다.
19 벨렉은 르우를 낳은 뒤에, 이백구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0 르우는 서른두 살에 스룩을 낳았다.
21 르우는 스룩을 낳은 뒤에, 이백칠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2 스룩은 서른 살에 나홀을 낳았다.
23 스룩은 나홀을 낳은 뒤에, 이백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4 나홀은 스물아홉 살에 데라를 낳았다.
25 나홀은 데라를 낳은 뒤에, 백십구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6 데라는 일흔 살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하란은 롯을 낳았다.
28 그러나 하란은 그가 태어난 땅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29 아브람과 나홀이 아내를 맞아들였다.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이고,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이다.
하란은 밀가와 이스가의 아버지이다.
30 사래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서, 자식이 없었다.
31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
32 데라는 이백오 년을 살다가 하란에서 죽었다.
창세기 11 : 10 ~ 32절 - 새번역성경
위의 말씀과 같이 아브람은 맏아들에 계보를 잇고 있는 맏아들
이었습니다. 맏이의 역할은 부모가 부재 시에 부모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위치를 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맏이(첫 것)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이가 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맏이의 계보로 하셨고, 그 맏이의 계보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레위 지파를 맏이를
대신하여 제사장으로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배반과 더불어 레위지파가 하나님을 배반하였기에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셨던 그대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후에
이사야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이사야 48장에서 새로운 일을 방금 새롭게 계획하셨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다지파를 선택하셨고, 맏이로서 역할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 맏이 역할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 받을 때에 예수님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맏이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맏이인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그대로
삶을 뒤따라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의 길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여 보겠습니다.
. 하나님 앞에 맏이는 이스라엘이다.
22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출애굽기 4 : 22절 - 새번역성경
. 이스라엘 중에서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맏이로
하나님의 것이다.
17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모든 맏이는 나의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모든 맏이를 쳐서 죽이던 날,
내가 그들을 나의 몫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18 나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모든 맏이 대신에,
레위 사람을 나의 것으로 삼았다.
19 내게 바쳐진 그 레위 사람을, 이제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구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회막에서 맡은
일을 하게 하려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하여 주어,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접근할 때에라도 재앙을 받지 않게
하려고,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레위 사람을 주었다."
20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레위 사람에게 해주라고 지시하신 대로,
레위 사람에게 다 해주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그대로 해주었다.
21 레위 사람은 죄를 벗어 자신들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입었다. 아론은 그들을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바쳤고, 그들의 죄를 속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였다.
22 그렇게 하고 나서, 비로소 레위 사람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보는 데에 나서서, 그들이 맡은 회막 일을
할 수 있었다.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레위 사람에게 해주라고
지시하신 그대로, 그들에게 다 해주었다.
2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4 "레위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법이 적용된다.
스물다섯 살이 되는 남자는, 회막에 들어와서 맡은 일을 하기
시작한다.
25 쉰 살부터는 회막 일을 하지 않는다.
26 다만 그들은, 동료들이 회막에서 맡은 직무를 수행할 때에
그들을 도울 수는 있어도, 그들이 직접 그 일을 맡아서 하지는
못한다. 너는, 레위 사람이 이와 같이 직무를 수행하게 하여라."
민수기 8 : 17 ~ 26절 - 새번역성경
.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이가 되십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11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18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21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22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3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 : 1 ~ 39절 - 새번역성경
이와 같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것 즉 맏이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맏이(이스라엘)는 모든 민족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초림 시에 본을 보여 주셨던 것과 같이 본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섬기면서 보였어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에 자유로 착각을 하여
하나님을 욕먹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탄에 깊은 흉계를 인함이며, 초대교회 때에 일곱
집사 중에 니골라 당을 창시한 니골라 집사에 의하여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깨닫고 회개하는 그 순간이 바로 은혜 받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통곡에 회개로부터
시작하여 삶의 모든 순간, 순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무장되어서
함께 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회개임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때부터는 맏이의 계보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통하여 세우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의 맏이가 된 이스라엘이 그러하였고, 야곱(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지명하여 부른 레위를
이스라엘나라 중에서 맏이 역할을 대신하게 하시면서 동시에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계보를 유다로 하신 이유도 맏이의 자격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을 보셔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정하셨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첫 째는 르우벤인데 르우벤이 아버지의 침상을 범하여
첫 째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고, 둘째인 시므온과 셋째인 레위는
이스라엘의 딸 디나의 사건으로 정의롭지 못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34장, 35장 참고)
좀 더 살펴보면, 이스라엘 중에 맏이로 선택하신 레위자손들 마저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맏이의 역할과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동생 디나를 하몰의 아들 세겜이
강간하여 욕보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할례를 권하여 할례를 행한
하몰의 아들 세겜과 그 백성들을 속여서 목숨을 해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범한 것과 같은 악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지 않겠다는 증거의 표로서 아들을 낳으면
팔 일째 되는 날에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하는 표로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함께 할 것을 언약하는
표를 함께 거할 외국인이나, 종에게도 행하게 하셔서 말씀에 순종할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하신 것이 할례인데, 이러한
할례를 이용하여 누이동생 디나의 복수를 한 것은 말씀에 불순종한
것으로 사실 상 하나님께 벌 받을 일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참고)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유다지파를 통하여, 믿음의 계보를 잇는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로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할례의 참의미를 예수님께서 직접 본을 보여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임을 가르쳐 주셔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본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물세례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직접 성령세례를 받으심으로서 참 할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물세례는 노아의 홍수 때에 죽은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로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양심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을 살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결심을 보이는 것이고, 이러한 죄로부터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십자가에서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로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를 대속하는 제물과 대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아버지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도장)쳐 주시는 것이고, 이러한 성령세례는 곧
하나님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거룩한 삶을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할 의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의무를 성실하게 실행하면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부로서 의무를 이행하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믿고, 나름대로
말씀 안에서 살려고 애쓰며 살지만, 성령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자신 속에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초대 손님으로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참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두 종류의 믿음을 후세에 남김
. 첫째 믿음은 인본주의적 믿음입니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으로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언약을
받았으나, 인간적인 소망이 끊어졌을 때에, 아내 사래로부터
자신의 여종 하갈에 몸을 통하여 자손을 볼 것을 제안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손을 갖게 된 믿음으로 모든 인류에게 인본주의적인 믿음을
남겨 놓았습니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멸시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6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7 주님의 천사가 사막에 있는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은 수르로 가는 길옆에 있다.
8 천사가 물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이 대답하였다.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10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11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너는 임신한 몸이다.
아들을 낳게 될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여라.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12 너의 아들은 들 나귀처럼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족과 대결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13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 지어서 불렀다.
14 그래서 그 샘 이름도 브엘라해로이라고 지어서 부르게
되었다. 그 샘은 지금도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그대로 있다.
15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니,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다.
16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날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이었다.
창세기 16 : 1 ~ 16절 - 새번역성경
이와 같이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은 인간적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믿음의 조상에 대한 언약을
받았지만, 언약의 표인 할례를 행하기 전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기 전이었던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에 표를 보인 약속인 것으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계약을 체결한 표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계약을 맺기까지를 살펴보면 아브람으로 살 때에
인간적인 흠과 잘못과 믿음의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지명하여 부르셨고, 죄악으로 가득한
바빌론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75세
이었고, 떠날 것을 명령하시면서 아브람에게 주실 축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 다섯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8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9 아브람은 또 길을 떠나, 줄곧 남쪽으로 가서,
네겝에 이르렀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브람은 이집트에서 얼마 동안 몸 붙여서 살려고,
그리로 내려갔다.
11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아리따운 여인인가를 잘 알고 있소.
12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오.
13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
14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아브람의 아내를 보고, 매우 아리따운 여인임을 알았다.
15 바로의 대신들이 그 여인을 보고 나서, 바로 앞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였다.
드디어 그 여인은 바로의 궁전으로 불려 들어갔다.
16 바로가 그 여인을 보고서, 아브람을 잘 대접하여 주었다.
아브람은 양 떼와 소 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 녀 종과
낙타까지 얻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
저 여인이 너의 아내라고,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19 어찌하여 너는 저 여인이 네 누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내가 저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다. 데리고 나가거라."
20 그런 다음에 바로는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아브람이 모든 재산을 거두어서 그 아내와 함께
나라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창세기 12 : 1 ~ 20절 - 새번역성경
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창세기 18 : 19절 - 새번역성경
위에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에게 약속의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시면서 동시에 어떠한 복을 주실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셨고, 7절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땅을 보여 주시며 다시금 약속을
확인 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이에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예배드립니다.
즉 믿음의 행동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옮겨 다니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않고, 자신의 지식으로 이집트 땅으로 향하여 갑니다.
그리고 이 이집트 땅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하여 당시에
이집트 왕(바로)에게 자신의 아내를 빼앗깁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한 몸인 아내를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당한 사래는 얼마나 수치심을 느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아브람을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않으시고,
잠잠히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선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람도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기로
작정하고 자신의 삶에 뿌리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면서
고향을 떠났지만, 녹녹치 않은 세상과 마주하면서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현실을 좇아서, 가뭄을 피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게 되는 위기를 마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람의 믿음 또한 여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브람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힘입어 아브라함으로 개명하게 됩니다.
. 둘째 믿음은 신본 주의적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부르시는 이유를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인본주의적인 아브람의 믿음을 통하여
보듯이 부르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 베푸신 사람들의 믿음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들의 죄를 인하여 겪게 되는 온갖 환난을
허락하시며, 그 허락하신 환난 중에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는지 그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극심한 가뭄을 피하여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자신의 지식을 따라서 이집트를 향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들이 어떠한 인본주의적인 가르침을
인하여, 그 후손들 또한 아브람과 같은 결정을 할 것인지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후손들에게 어떠한 일들이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2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3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말씀드리니,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5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7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8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10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11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12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13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14 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그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
15 그러나 너는 오래오래 살다가, 고이 잠들어 묻힐 것이다.
16 너의 자손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벌을 받을 만큼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18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19 이 땅은 겐 사람과 그니스 사람과 갓몬 사람과
20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르바 사람과
21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을 다 포함한다."
창세기 15 : 1 ~ 21절 - 새번역성경
이처럼 아브람의 자손들이 그 조상 아브람이 한 것처럼
꼭 같은 행동을 할 것을 모두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람에게 모두 알려주셨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인지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마저도 이 때에는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을
느꼈고,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경험하게 되면서 100세에 언약을
통한 자손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인간적인 모든 소망이 끊어졌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만을
바랄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통하여 받은 본처 소생 이삭이 할례를 함께
받은 종에 몸을 통하여 얻은 이스마엘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믿음에 시험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본주의로 받은 종의 몸을 통하여 얻은 이스마엘과
함께 표피를 베어 할례를 통하여 받은 언약과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얻게 될 자손인 신본주의적으로 얻은
이삭과 드리는 믿음의 제사를 통하여 받은 어린양의 제사를
통한 복에 대하여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영적인 영안을 갖기
위하여 힘써야만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인본적인 믿음과 신본적인 믿음에 관하여
좀 더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삶을 통하여 본 바로는
인본주의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보다는 자신의 지식과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서 사는 믿음으로 육체적인 소욕에 필요를 채우는 믿음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생각됩니다. 즉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갖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아마도 하나님의 노여움에 들어갈 것입니다.
반면에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는 신본주의적인 믿음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본연에 모습을 찾아가듯이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영의 호흡)를 통하여
영혼이 깨어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만큼 믿음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하고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부터 믿음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땅 밑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믿음을 시험
하시면서 보여주신 수풀에 뿔이 걸려 있었던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인간들을
구원할 제물이 될 것에 대하여 보여 주셨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확인하여 보겠습니다.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20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브라함은 밀가가 자식들을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밀가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 사이에서 아들들이 태어났는데,
21 맏아들은 우스이고,
그 아래로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과 같은
동생들이 태어났다.
23 브두엘은 리브가의 아버지이다.
이 여덟 형제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과
그 아내 밀가 사이에서 태어났다.
24 나홀의 첩 르우마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 등 네 형제를 낳았다.
창세기 22 : 1 ~ 24절 - 새번역성경
위에 창세기 22장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1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창세 이후로 얼마나 사람들에게 실망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시기를 갈망하셨으면,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복(은혜)을 주시는 통로가 되는
사람을 찾으시려는 , ...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확인하시기를
원하셨던 그러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미 창세전에 구원의 통로가 되어 주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실 것에 대하여
예증하여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2절 말씀을 살펴보면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한 장소를 지정하여 주시고 100세에 본처 사라를 통하여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받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에서 좀 더 생각하여 볼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장소입니다. 이 장소가 사실은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장소입니다. 이 장소는 곧 예루살렘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서게 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확인하여 보겠습니다.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2 솔로몬이 왕위에 나아 간지 사년 이월 초이일에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역대하 3 : 1 ~ 2절 - 새번역성경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고 하시면서 살아있는 자에 하나님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사람들에 관하여 기록하신
내용들로 그 믿음의 시작을 아브라함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말씀에 자신의 분신인 아들이삭까지도 말씀을
따라서 제물로 받치는 데까지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하고, 확실하게 알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아들이삭을 제물로
받치더라도 살려주실 것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생명을 내시고, 모든 생명들을 돌보시면서
모든 생명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늘 나타내 보이셨고, 현재에도
그렇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셨으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을 이간질하여 분리되게
만든 존재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또 다른 생명체(네피림)가
생겨났고, 그 결과로 사람 사는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죄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시게 되었고, 이 심판은 물로
세상에 생명체들을 멸망시키신 그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하나님은 죄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의인을
준비하셨고, 그 의인을 통하여 생명체를 세상에 다시금 번성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의인이 바로 노아이고, 그의 아들들인 셈, 함, 야벳을 통하여
다시금 세상에 생명체들이 번성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 세 아들 중에 셈의 자손으로서
하나님께서 75년간 인생의 여정을 살피시면서 택하셨고,
그 후로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을
아브라함(모든 민족의 아버지)으로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시험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에
대하여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에 비교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와 같이 많아 질 것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때는 75세 때이었고, 10년이
지나도록 자손을 주시지 않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가 아브람에게는 인본주의적인 믿음을 가진 상태
이었고 인간적으로는 소망이 끊어지고 있었던 상황으로 본처인
사래의 제안으로 하갈과 동침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자손을
본 이스마엘의 자손과 아브라함으로 신본주의적인 믿음에서
낳은 이삭의 자손이 현재 세상에 함께 공존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영적인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창세기 15장을 통하여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5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15 : 4 ~ 6절 - 새번역성경
창세기 15장 4절에서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 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은 곧 사래의 몸을 통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한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며, 실제로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하와를 만드셨음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이스마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제물로
받치라고 명령하실 때에 이삭에 대하여 외아들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 또한 같은 맥락임을 알아야합니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창세기 22 : 15 ~ 16절 - 새번역성경
예수님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표현들로 인하여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말씀을 보면
말씀에 오류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위에 말씀들을 잘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무엇을 바라시며, 어떠한 세상을 준비해놓으셨는지를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살아있는 자에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 믿음을 이삭이 태어나 자라면서 함께
약 13년을 보았었고,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고 어머니 사라로부터 지속적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외아들 이삭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는
순간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단 둘이서 제단을 향하여 가는
순간에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확인합니다.
불과 제물을 잡을 칼을 비롯하여 다른 것은 모두 준비가
되었는데, 제일 중요한 제물이 보이지 않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외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러한 외아들 이삭에 물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러한 대답에 이삭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제단을 향하여 말없이 걸어갑니다.
그리고 정해주신 장소에서 제사를 드리려 장작을 펼쳐놓고
자신을 결박하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
당하여 장작 위에 제물이 되어 눕습니다.
이러한 이삭에 믿음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 후에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에 족보이야기를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브라함에 하나님, 이삭에 하나님, 야곱에
하나님으로 말씀하시면서 살아있는 자에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태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이스라엘)도 살리실 것이고,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순종의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고,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성경말씀보다는 과학을 더 맹신하고 있으며,
과학이라는 학문아래 현재 존재하는 매스컴을 비롯하여, 로봇,
자동차, 각종 영화, 음악, ... 속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조차
없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학문을 통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잘 받아
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비현실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인본주의적인 삶에 방식으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과
하나님과 충분히 동행을 하면서 자신이 100세에 모든 소망이
사라진 후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전능하심을 힘입어 선물로
받은 믿음의 자손 이삭에 후손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부터 22장 참고)
이러한 내용들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말씀을 통하여 자세하게
살피면서 자신의 삶에 목표를 확실히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면서 마음을 정하여 삶을 잘
살아내야 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기초를 삼아 자신의 마음에 상태에
따라서 집을 지을 재료가 주어질 것입니다.(고린도전서 3장 참고)
이 모든 것들을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자유의지를 따라서
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 자유의지 때문에
더 이상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단 자신이 스스로를 비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마음 문 밖에서 두드리시던 성령께서
함께 동거하시며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열매 맺는 삶으로
인생여정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사람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 증거가 아브람이 조카 롯을 당시 가나안 땅에 왕들이
잡아서 모든 가족과 재산을 잃고 정처 없이 소망을 잃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때에 큰 아버지 아브람이 자신을 구하여
주었고, 이러한 일, 역시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뒤 좇아서
바빌론을 떠난 믿음의 선택을 인함이며, 믿음의 조상께서
하나님께 간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카 롯을 구하고 귀환할 때에
아브람을 마중 나온 두 존재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아브람으로 살 때와 아브라함으로 살 때에
자손을 본 것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고 이해됩니다.
1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의 시대에,
2 이 왕들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왕 곧 소알 왕과 싸웠다.
3 이 다섯 왕은 군대를 이끌고, 싯딤 벌판
곧 지금의 '소금 바다'에 모였다.
4 지난날에 이 왕들은 십이 년 동안이나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십삼 년째 되는 해에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5 십사 년째 되는 해에는, 그돌라오멜이 자기와 동맹을 맺은
왕들을 데리고 일어나서, 아스드롯가르나임에서는 르바 사람을
치고, 함에서는 수스 사람을 치고, 사웨 기랴다임에서는
엠 사람을 치고,
6 세일 산간지방에서는 호리 사람을 쳐서,
광야 부근 엘바란까지 이르렀다.
7 그리고는, 쳐들어온 왕들은 방향을 바꿔서, 엔미스밧
곧 가데스로 가서, 아말렉 족의 온 들판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까지 쳤다.
8 그래서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왕 곧 소알 왕이 싯딤 벌판으로 출전하여,
쳐들어온 왕들과 맞서서 싸웠다.
9 이 다섯 왕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이 네 왕을 맞아서 싸웠다.
10 싯딤 벌판은 온통 역청 수렁으로 가득 찼는데,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의 군인들 가운데서 일부는
그런 수렁에 빠지고, 나머지는 산간지방으로 달아났다.
11 그래서 쳐들어온 네 왕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과 먹 거리를 빼앗았다.
12 아브람의 조카 롯도 소돔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롯까지 사로잡아 가고, 그의 재산까지 빼앗았다.
13 거기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 하나가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 때에 아브람은 아모리 사람 마므레의 땅,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마므레는 에스골과는 형제 사이이고, 아넬과도 형제 사이이다.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을 맺은 사람들이다.
14 아브람은 자기 조카가 사로잡혀 갔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낳아 훈련시킨 사병 삼백열여덟 명을 데리고
단까지 쫓아갔다.
15 그 날 밤에 그는 자기의 사병들을 몇 패로 나누어서
공격하게 하였다. 그는 적들을 쳐부수고,
다마스쿠스 북쪽 호바까지 뒤쫓았다.
16 그는 모든 재물을 되찾고,
그의 조카 롯과 롯의 재산도 되찾았으며,
부녀자들과 다른 사람들까지 되찾았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을 맺은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온 뒤에,
소돔 왕이 아브람을 맞아서,
사웨 벌판 곧 왕의 벌판으로 나왔다.
18 그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천지의 주재,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20 아브람은 들으시오. 그대는,
원수들을 그대의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시오.
"아브람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주시고, 물건은 그대가 가지시오."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주 하나님께,
나의 손을 들어서 맹세합니다.
23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4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함께 싸우러 나간 사람들
곧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에게로 돌아갈 몫만은
따로 내놓아서, 그들이 저마다 제 몫을 가질 수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4 : 1 ~ 24절 - 새번역성경
위에 창세기 14장 말씀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이러한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늘에서 불과 우박, 등을 내리셔서,
하나님께 멸망당하여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나라에 대제사장이 아브람에게 나타난
것 자체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빵과 포도주를 갖고 나타나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 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유월절 성찬을
가지실 때에 있었던 빵과 포도주를 함께 생각하시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것들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지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람의 믿음을 확고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제사장 이신
멜기세덱을 보내셔서 격려하시고, 모든 것들을 회복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할 기회를 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창세기 14장에 말씀은 같은 믿음으로 백부인 아브람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한 조카 롯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저하지 않고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전쟁터로 나선 아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한 몸인 사래를 두고는 누이라
하여 두 번씩이나 자신의 아내를 빼앗길 번 하였던 믿음의 조상아브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대물림 되어 아들이삭마저
후에 자신의 아내인 리브가를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실이며, 거짓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함께
살았던 사래와 리브가에 입장에서 보면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생의 아들 앞에서는 다른 행동을 합니다.
물론 먼저 세상을 떠난 친동생의 아들인 조카 롯이 아브람에게는
각별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아내인 사래보다도 더 각별했을까요?
이러한 상황을 놓고 저에게 드는 생각은 위기가 닥쳐 올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찾을 수 있는가? 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볼
필요를 느낍니다.
아브람도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와 아내 사래를 누이라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브람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셨고, 위기의
상황에서 건져 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재물에 복을 더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잠잠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일하시고
계시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아브람과 현재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을
약속받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답이 바로 창세기 14장에 있습니다.
소돔 왕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마중 나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감사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챙기려고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을 통하여 축복하신 후에
하나님께만 경배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기억하게 된
아브람은 자신의 재산에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 십일조는 곧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며,
하늘나라에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 또한 이러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입니다.
이 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던 하늘의 대제사장이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에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사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아버지 앞에 직접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아브람처럼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성령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소돔 왕 앞에서 하나님과 세상 것을
놓고 결단하기 직전에 하늘의 대제사장 멜기세덱으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나타내 보이셨던 것과 꼭 같이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 속에서 그 마음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반석위에 믿음을
소유하여 은과 금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있을,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부터 자신들이 지은 믿음의 삶에 열매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참고)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람이 세상 것을 좇아서 살지 않고,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예배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 인생여정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성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살 때에 아브라함에 뜻이 모든 민족의 아버지
이듯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나라에서는
자신들이 사랑으로 인도한 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로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믿음의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재에 자신들 앞에 있는 것들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얻으려고 자신들의 삶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삶에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현재에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빠른
변화 속에서 점차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소망,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며, 서글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임마누엘 곧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계시는
성령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에, 잘 인내하며 끝까지
반석위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치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받으십시오.
요한계시록 22 : 17절 - 새번역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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