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
모든 사람은 자유를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자유는 사람을 방종으로
이끌면서 그 사람이 누리던 자유로부터 그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득차고 넘쳐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스스로를 굴레 씌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놓고 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 여든 자들입니다.
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9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11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12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13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2 : 1 ~ 21절 - 새번역성경
위의 갈라디아서 2장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는 어떻게
생각하면 쉬울 수 있지만, 깊이 생각하여 보면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 즉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특 심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특 심이
오히려 이들 유대인들을 넘어지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일은 율법주의적인 일들로서 하나님께서 법을 왜 주셨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무지에서 나오는
지식은 스스로는 완전하게 행한다.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법에 얽매여서
그 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즉 법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데도
그 법을 우상으로 섬기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그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 되고, 방종이 지나치면 법의 굴레에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신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다스려야 할 존재들에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에서 자신의 근본을 찾으려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조상들이 전한
말을 더 하나님보다 위에 놓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누려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자유를 스스로 버리고 굴레
씌워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기에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베드로 역시 이러한 유대교의 할례에 자신을 얽어매서 이방인 교우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러한 이중적인
사도 베드로의 생활에 대하여 나무랐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드러내게 하시기 위한 것이며, 사람 스스로는 드러난
죄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법과 함께 성령을 믿음을 통로로 삼으셔서 보내주셨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마음의 법, 성령의 법을 따라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들이 죄를 인하여 죽음에게 속하였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의 제사로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자신의 믿음의 마음으로
구원의 문을 여는 믿음의 열쇠로 여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 그 사람이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하게 하고, 세례를 받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선한 양심을 따라서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상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印)쳐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은혜로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고난과 환난을 겪으며 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더 나아가 죄로부터 오는 죽음을 이기게 되어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인내가운데 살아낸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 즉 두 번째 불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분적으로 누리던 자유, 즉 마음과 영으로 누리던 제한 된 자유를
새로운 몸을 입으면서 완전하게 누릴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맏이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에게 십계명, 율법을 주셔서
죄를 드러내셨고, 그 죄를 없애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 사람의 몸을 성령의
능력으로 입히셔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30년을 살게 하신 것은 믿음의 사람이
성령을 힘입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새사람이 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맏이로서 하나님 자녀로 사는 본을 보여 주신 것으로
순종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생애 삶을 시작
하시면서 물세례, 즉 하나님 아버지의 첫 번째 심판을 인정하시는 요단강에
세례를 받으신 것이며, 말씀에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로부터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신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회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즉 이사야 11장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일곱 영을 부어 주셔서 수많은 기적과
능력의 말씀으로 영혼을 깨우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일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사람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너무도 크고 놀라워서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으며,
인류를 구원하시는 은혜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동역 자가
되며, 놀라운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로 얻은 자유를 육체의 소욕을 따르며, 제한하는 것은
구원의 은혜에서 뒤로 물러나는 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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