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과 성숙한 믿음

송병청 2017. 10. 20. 00:13




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과 성숙한 믿음)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4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3 : 1 ~ 4- 새번역성경

 

 

위에 말씀은 사도 바울께서 사역하셨던 고린도교회가 분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엄하게 꾸짖고 있는

서신서입니다.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기록하였다고 하여, 사도 바울의 말로

받는 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근거는 오직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데서 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분은 모세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기록은 천지창조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창조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현재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려 하면 믿음의 기초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인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아버지께서 하나님아버지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저자의 생각과 감정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존중하셔서 기록하게 하셨지만, 그 본래의 뜻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 기본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

기록한 사람들만 해도 약 40여명이 넘고, 기록되어진 기간을

보더라고 약 1,500년 정도에 걸쳐서 기록되었지만,

그 기본 틀은 한결 같다. 는 사실에 기인(起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심을 기준으로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지지만, 그렇다고 구약이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주신 대로,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0 : 7- 새번역성경

 

 

위에 요한계시록 107절 말씀과 같이 구약의 예언자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부분에 말씀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학을 통하여 인문학적으로 말씀을 살피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구약은 모두 이루어

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 라고 단정 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의 대상을 따라서 행동하는 삶이 뒤

따라야만 믿는다. 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지만, 이 의를 행하지 않으면 결코

완전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즉 거룩해지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기초가 흔들리면 우리의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에서 더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에 대한 축복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는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 라고 말씀하시며,

영에 것은 살리는 것이고, 육에 것은 죽음이라고 확실하게

단정 지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6 : 63- 새번역성경

 

 

이 외에도 로마서 7 : 14, 로마서 8 : 6,

고린도전서 15 : 46 ~ 58, 등 많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해보세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믿음의 선진들께서는 대부분

육체적으로는 비참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선진들에 믿음이 잘 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그 분들이 영적으로 바라본 그 무엇이 있었다는

말씀일까요?

저의 마음에 눈을 열어 주셔서, 성경말씀이 기존에 보았던

말씀보다 더 깊은 뜻이 있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대하여 깨닫게 하셨을 때에 보게 하신 것은

현재에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큰일 난다는 사상이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있다는 현실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는 현실에

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어렴풋이 희미하게

보는 믿음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믿음에 현 주소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저의 믿음이 힘들었고,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희미하게 느껴졌으며, 현실 삶에서 사소한 일에는

상관하시지 않는 분으로 여겼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에는 젖 먹이와

같은 믿음으로 전신갑주를 착용하기에는 영적으로 너무도

미성숙하여 도저히 전신갑주((구원의 투구, 의에 흉패, 진리의

허리띠, 복음의 신, 왼 손에는 구원의 방패, 오른 손에는

성령의 검/말씀의 검))를 착용할 만한 영이 아니어서, 보이는

육체의 소욕과의 사이에서 갈등하며, 늘 제자리걸음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죽지 않고 수시로 저의 못 된

인격을 통하여 화()가 표출 되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 좋은 모세도 이 화()를 다스리지 못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하였던 것입니다. (신명기 32 : 51 ~ 52절 참고)

그렇습니다. ()를 내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현재에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그 현실을 주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며,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을 통하여 이루고 계시며, 장차 이러한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상 받게 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인내함으로서 사랑하며, 성령님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힘써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상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다스려 주실 때에

그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겨나고, 현실이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바울께서 말씀하시는 것 또한 육체적인

정욕에서 서로 잘 났다고 싸우는 것을 꾸짖으시며, 아볼로 파니,

바울 파니 하면서 파당을 짓는 것에 대하여 그럴 수 없으며,

예수님 앞에서 겸손히 하나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 모든 교회들 또한 교파를 나누어 서로 견제하는 교회들은

회개하고 오직 성경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모습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도 자손들끼리 서로 잘 났다고 싸운다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는 자손들에게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수단을 알려주려고 교육을 시키며,

온갖 것으로 자손들이 편하게 살게 하려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보다 더한 사랑을 사람들에게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실체는 자연에 모든 현상들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계절이 존재하고 계절을 따라서 풀, 나무, 온갖 꽃, 동물들이

생존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질서를

지키게 하시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 때에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2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3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5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6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7 그 날 새벽에 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천사들은 모두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8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9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바다를 감싼 것은,

바로 나다.

10 바다가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고, 바다를 가두고

문빗장을 지른 것은, 바로 나다.

11 "여기까지는 와도 된다. 그러나 더 넘어서지는 말아라!

도도한 물결을 여기에서 멈추어라!" 하고

바다에게 명한 것이 바로 나다.

12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네가 아침에게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에게 명령하여,

새벽이 제자리를 지키게 한 일이 있느냐?

13 또 새벽에게 명령하여, 땅을 옷깃 휘어잡듯이 거머쥐고

마구 흔들어서 악한 자들을 털어 내게 한 일이 있느냐?

14 대낮의 광명은 언덕과 계곡을 옷의 주름처럼,

토판에 찍은 도장처럼, 뚜렷하게 보이게 한다.

15 대낮의 광명은 너무나도 밝아서,

악한 자들의 폭행을 훤히 밝힌다.

16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물 근원에까지 들어가

보았느냐? 그 밑바닥 깊은 곳을 거닐어 본 일이 있느냐?

17 죽은 자가 들어가는 문을 들여다본 일이 있느냐?

그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문을 본 일이 있느냐?

18 세상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어디 네 말 한 번 들어 보자.

19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

어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20 빛과 어둠이 있는 그 곳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그 곳을 보여 줄 수 있느냐?

빛과 어둠이 있는 그 곳에 이르는 길을 아느냐?

21 , 알고말고. 너는 알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살아왔고,

내가 세상 만드는 것을 네가 보았다면,

네가 오죽이나 잘 알겠느냐!

22 눈을 쌓아 둔 창고에 들어간 일이 있느냐?

우박 창고를 들여다본 일이 있느냐?

23 이것들은 내가 환난이 생겼을 때에 쓰려고

간직해 두었고, 전쟁할 때에 쓰려고 준비해 두었다.

24 해가 뜨는 곳에 가 본 적이 있느냐?

동풍이 불어오는 그 시발점에 가 본 적이 있느냐?

25 쏟아진 폭우가 시내가 되어서 흐르도록 개울을 낸

이가 누구냐? 천둥과 번개가 가는 길을 낸 이가 누구냐?

26 사람이 없는 땅, 인기척이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는 이가 누구냐?

27 메마른 거친 땅을 적시며,

굳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게 하는 이가 누구냐?

28 비에게 아버지가 있느냐?

누가 이슬방울을 낳기라도 하였느냐?

29 얼음은 어느 모태에서 나왔으며,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 물을 돌같이 굳게 얼리는 이,

바다의 수면도 얼게 하는 이가 누구냐?

31 네가 북두칠성의 별 떼를 한데 묶을 수 있으며,

오리온성좌를 묶은 띠를 풀 수 있느냐?

32 네가 철을 따라서 성좌들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며,

큰곰자리와 그 별 떼를 인도하여 낼 수 있느냐?

33 하늘을 다스리는 질서가 무엇인지 아느냐?

또 그런 법칙을 땅에 적용할 수 있느냐?

34 네 소리를 높여서,

구름에게까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

구름에게 명령하여, 너를 흠뻑 적시게 할 수 있느냐?

35 번개를 내보내어, 번쩍이게 할 수 있느냐?

그 번개가 네게로 와서 "우리는 명령만 기다립니다."

하고 말하느냐?

36 강물이 범람할 것이라고 알리는 따오기에게

나일 강이 넘칠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이가 누구냐?

비가 오기 전에 우는 수탉에게 비가 온다고

말해 주는 이가 누구냐?

37 누가 구름을 셀 만큼 지혜로우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여서 비를 내리고,

38 누가 지혜로워서, 티끌을 진흙덩이로 만들고,

그 진흙덩이들을 서로 달라붙게 할 수 있느냐?

39 네가 사자의 먹이를 계속하여 댈 수 있느냐?

굶주린 사자 새끼들의 식욕을 채워 줄 수 있느냐?

40 그것들은 언제나 굴속에 웅크리고 있거나,

드러나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덮친다.

41 까마귀 떼가 먹이가 없어서 헤맬 때에,

그 새끼들이 나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를 때에,

그 까마귀 떼에게 먹이를 마련하여 주는 이가 누구냐?

욥기 38 : 1 ~ 41- 새번역성경

 

 

이와 같은 말씀을 38장에서 시작하셔서, 41장까지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뵙고, 욥이 하는 말씀이 42

말씀입니다.

 

 

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3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4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5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6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7 주님께서는 욥에게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분노한 것은,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8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마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지고 가서,

너희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번제를 드려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고, 어리석게 말하였지만,

내가 그대로 갚지는 않을 것이다."

9 그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니,

주님께서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10 욥이 주님께, 자기 친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욥의 재산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욥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보다 배나 더 돌려주셨다.

11 그러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전부터

그를 아는 친구들이 다 그를 찾아와,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기뻐하면서, 먹고 마셨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그 모든 재앙을

생각하면서, 그를 동정하기도 하고, 또 위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마다, 그에게 돈을 주기도 하고,

금반지를 끼워 주기도 하였다.

12 주님께서 욥의 말년에 이전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셔서,

욥이, 양을 만 사천 마리, 낙타를 육천 마리, 소를 천 겨리,

나귀를 천 마리나 거느리게 하셨다.

13 그리고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다.

14 첫째 딸은 여미마, 둘째 딸은 긋시아,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고 불렀다.

15 땅 위의 어디에서도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그들의 아버지는, 오라비들에게

준 것과 똑같이, 딸들에게도 유산을 물려주었다.

16 그 뒤에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그의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다.

17 욥은 이렇게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욥기 42 : 1 ~ 17- 새번역성경

 

 

욥기의 기록연대는 BC 2,000년경에서 BC 2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욥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모세, 솔로몬, 헤만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욥기의 배경과 무대

본서 무대는 욥의 고향이며 본서 전체의 배경이 되는 우스

땅이다(1:1). ‘우스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성경에서는 종종 에돔 지역과 관련하여 언급되며(25:19-20)

우스 땅에 사는 사람을 에돔인이라 부른 기록이 있고(4:21),

욥을 찾아온 친구 중 한 사람인 엘리바스의 고향 데만 역시

에돔 변방에 위치하고 있는 점, 게다가 욥의 가축 떼를 습격한

자들이 인근에 거주하는 스바 사람이나 갈대아 사람들(1:15, 17)

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우스는 아마 팔레스타인 남동쪽

내지는 에돔 국경 지대의 성읍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곳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비옥한 초원 지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1:14).

 

 

 

 

 

 

 

 

 

욥기의 배경과 무대

 

[네이버 지식백과] 욥기 [JOB]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생명의말씀사)

 

욥은 실존 인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욥기 중에 전설로만 생각 하고 있었던, 용에 대하여 설명한

말씀이 욥기 41장입니다.

41장을 자세하게 읽어 보세요. 상 상속에 존재하였던 용과

무엇이 다르죠? 입에서 불을 뿜고, 갑옷과 같은 비늘이 있고,...

처음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의심하고 믿지 못하였으나,

신명기 2929절에 말씀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 이야기 되고

있는 모든 것이 실제였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나타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명기 29 : 29- 새번역성경

 

 

하나님에 관한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관한 것은 현실이며,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2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4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7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8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 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11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12 참으로 너희는 기뻐하면서 바빌론을 떠날 것이며,

평안히 인도받아 나아올 것이다.

산과 언덕이 너희 앞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며,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다.

13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잣나무가 자랄 것이며,

찔레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화석류가 자랄 것이다.

이것은 영원토록 남아 있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할 것이다.

이사야 55 : 1 ~ 13- 새번역성경

 

 

이사야의 뜻은 여호와(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으로 초림부터

재림하셔서 일을 이루시는 모든 말씀이 이 이사야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전체를 축소하여 놓았다고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 이사야서는 모두 6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6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재림하셔서

행하실 일에 대하여,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에

대하여 까지 모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말씀을 해석해야만 할까요?

그리고 이 이사야서에 말씀이 이미 이루어졌을까요?

왜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큰일이 난다고 하는 것일까요?

현재에 개신교(기독교)에 시작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정말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사실 중에 루터가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던 그 일을 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현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신

분이 계십니다.

 

참고 : http://www.bradtv.co.kr/

위 홈페이지에서 루터의 두 얼굴을 확인해보세요

 

현재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정말로 귀한 것이고, 이러한 가치를

부인하거나, 격하 시키고자 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왜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적으로 보면

큰 일 나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인지, 아니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인문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바로 지금, 현재입니다.

이사야서 66장을 깊이 묵상해보세요.

이 말씀이 이미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대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내가 살 집을 짓겠으며,

어느 곳에다가 나를 쉬게 하겠느냐?"

2 주님의 말씀이시다.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이사야 66 : 1 ~ 2- 새번역성경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 적합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완벽하게 적합한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 받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그 들에 맏형이 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맏형은 모범을 보이며, 부모가 부재 시에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맏형은 존경받는 존재이자,

동생들을 책임지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인생을 살았던

그 인생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