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영생으로

무화과나무의 저주

송병청 2023. 6. 27. 15:59

무화과나무의 저주

 

 

예수님께서 초림 하셨을 때에 십자가상에 사역을 눈앞에 두고 시장하셨을 때,

무화과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 열매를 찾으셨지만, 열매가 없었고 나무를

저주하셨을 때에 무화과나무가 말라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열매를

찾으신 시기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맺지 않을 때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나무가 말라서 죽게

하셨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는 거기서 모든 것을 둘러보신 뒤에,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5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6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 저녁때가 되면, 예수와 제자들은 으레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26절 없음)

마가복음 11 : 11 ~ 25- 새번역성경

 

무화과나무는 죄와 관련된 나무로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한

후에 인간적인 해결책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 무화과나무의 잎이었으며,

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 날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죽옷을 입혀주십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는 삶을 말씀하실 때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로서 말씀하시며, 위의 마가복음 11장에서 열매가 맺을 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찾으셨던 것은 이어서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믿음의 삶에 결과물, 곧 열매를 맺는 삶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뜻,

곧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심과 같이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사람으로 사는 동안에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먼저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감정을 다스려서 선한 양심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사랑의 본체가 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삼위일체로서 하나가 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